사람의 마음까지 쑤욱 빨아들일 듯한 아름다운 비취빛 해변, <BR>세계 속의 한국을 말해주듯,<BR>‘~ 사세요’, ‘싸다, 싸’를 서툰 발음으로 남발(?)하며 쳐다보는 <BR>순수하기 그지없는 사랑스런 주민들, <BR>‘쟤들은 뭘 먹고 저렇게나 자랐다니?’ 묻고 싶은 <BR>키다리 코코넛 나무들의 키 자랑 대회,<BR>하염없이 느린 황소걸음의 여유 있는 시간들과의 한적한 만남,<BR>보라카이의 3박 4일은 나에게 그렇게 안식 자체였다.<BR><BR>ATM, 호핑 투어, 라바스톤 마사지 등, <BR>3박4일의 낭만을 아쉬움 속에 묻으며,<BR>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 벌써 7개월,<BR>또 다시 서울에서 나의 일상 속의 시간들은 <BR>‘용용 죽겠지. 나 잡아봐라’ 하며<BR>마치 그날의 비행기 속도만큼이나 재빠르게 내 곁을 스쳐 달아나 버리곤 한다. <BR><BR>투어 중 나의 예명은 ‘어머니’였다.<BR>그 여행이 9월 학기 대학원에 진학한 딸을 축하하여 둘이 함께 한 여행인 데다,<BR>대부분이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팀이다 보니,<BR>‘딸의 어머니’란 호칭을 줄여 자연스레 그렇게 불리게 된 모양이다.<BR><BR>이 호칭은 맨 먼저 가이드님이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BR>나는 내 딸이 부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BR>‘어머니’라는 호칭을 그렇게 달콤하게 받아본 기억이 없다.<BR><BR>우리 팀의 가이드님은 ‘레오’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쾌활한 청년이었다.<BR>그런데 이 가이드님이 ‘어머니’라고 호칭할 때,<BR>‘딸의 어머니’라는 단순 호칭에 더하여,<BR>그 속에 나이든 이에 대한 깍듯한 예우가 녹아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BR>참 잘 배우고 잘 자란 젊은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BR><BR>내 나이가 아직 50대 중반이니,<BR>서울에서는 나이로 인한 섬김이나 존중을 받는 다는 것을 상상하며 산 적이 없었다. <BR>사정이 그러니 처음 받아보는 높임의 의미가 생경하고 쑥스럽기도 하면서, <BR>한 편으로는 뿌듯함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또 무슨 조화인지 모른다.<BR><BR>기대를 했던 호핑 투어 때, <BR>그날따라 눈먼 고기가 없었던지<BR>나는 한 마리도 못 잡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멀미까지 했다.<BR>그 모습을 본 가이드님 왈, <BR>배 밖으로 나오면 좀 나을 거라면서 자기가 앉은 곁에 앉으라고 권한다.<BR>사실 별 것 아니라면 아닐 수 있지만,<BR>젊은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BR><BR>뿐만 아니라 그날 잡은 물고기를 즉석에서 회로 무쳤는데,<BR>나는 그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BR>이미 나는 배멀미를 해서 곳이 메스꺼운 데다가, <BR>회라고 한 접시가 나왔는데 그 양이 어찌나 적은지 <BR>모두에게 한 입씩이나 돌아갈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BR><BR>게다가 나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 않은가 말이다.<BR>무슨 양심이 있어야 군침이라도 흘리지.<BR>그런데 웬걸, 가이드님은 손가락으로 한 점을 딱 집더니<BR>어머니가 맨 먼저 먹어야 한다며 내 입에 넣어 준다. <BR>그 새콤달콤한 회 한 점을 받아먹고 나니 멀미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BR><BR>나는 20여년을 교단에 서 온 교육자이다.<BR>교육자적인 시각으로써가 아니더라도<BR>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배려해 주는 것은 참으로 모양이 좋지 않은가? <BR>그런 대우를 받은 사람이 단지 ‘나’ 자신이기 때문에 감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BR>그렇지 않아도 ‘요즘 젊은 사람들’이라는 부정적인 볼 멘 소리를 자주 접하는 세상이다.<BR><BR>젊은이들 틈에서 자칫 소외되기 쉬운 나이든 사람을<BR>마치 자신의 어머니에게 하듯, ‘어머니’, ‘어머니’ 하며, <BR>세심하게 챙겨주고 배려해 주는 젊은이가 <BR>아직도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이 싱그럽기까지 하다.<BR><BR>우리 사회가 연장자에 대해, <BR>그리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이에 대해, <BR>이처럼 우선시 해주고 존중해 줄 수 있는 분위기로 나아간다면, <BR>얼마나 격조 높은 문화를 가진 전통 깊은 사회로 비칠 수 있을까를 <BR>깊이 새겨보게 하는 시간들이었기에<BR>가이드 레오님께 감사한다.<BR><BR>레오, 지금 이 시간도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BR>그 특유의 친절을 내면 깊숙한 곳에서 뿜어 올리고 있겠지.<BR><BR>멋진 사람들이 있어, <BR>또 다시 찾고 싶은 보라카이다.<BR>
여행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