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령산 편백나무 숲속의 오솔길은 최고의 피톤치드 샤워장이다.

 

일상에 찌든 때를 벗겨내고 싶으면 사람들은 홀연히 산으로 떠난다. 산은 정신적 안정과 육체적 피로를 풀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산은 인간에게 좋은 많은 것을 선물한다. 여행의 목적이 재충전에 있다면 최근 여행의 테마는 단연 '치유'라는 단어로 압축할 수 있겠다. 산의 좋은 기(氣)를 받고, 특히 침엽수림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통한 치유능력은 학술적으로도 입증됐다.

치유에 적합한 곳은 참 많다. 기자는 이번에 치유의 장소로 전라남도를 골랐다. 편백나무 가득한 전라남도 장성의 축령산에서는 피톤치드로 샤워하고, 기로 꽉찬 월출산으로 유명한 영암의 천년고찰 도갑사에서 '쉼'에 대해 느끼고 돌아왔다. (장성·영암)글·사진 = 황인교 기자 asdf@clubcity.kr

◇ 피톤치드 샤워장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 숲

배롱나무꽃

노란 상사화

전라남도 장성 축령산에 들어서자 배롱나무꽃과 노란 상사화가 곳곳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배롱나무 꽃은 7월에서 9월까지 100일 동안 붉게 피어 있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여름 꽃이다. 상사화는 4월초쯤 나온 잎이 5월말쯤 없어지고 8월말에서 9월초 사이에 잎 없이 꽃대만 올라와 꽃을 피운다. 잎이 있을 땐 꽃이 없고, 꽃이 있을 땐 잎이 없어 꽃과 잎이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의미에서 '상사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제 가을이 되면 축령산에서 이들 여름꽃을 보는 것은 내년으로 미뤄야하겠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사실 축령산의 주연은 바로 편백나무이기 때문이다.

 

축령산 편백나무 숲길은 걷기 좋은 길이 잘 조성돼 있다.

 

홍길동의 고장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장성군은 백양사의 애기단풍이 유명하지만, 최근에는 '치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편백나무 숲길로 유명한 축령산(621m)자연휴양림이 삼림욕의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축령산은 전라북도 고창군과 걸쳐 있다. 문수사가 자리잡은 고창쪽에서는 문수산이라고 부르지만 장성에서는 축령산으로 부른다. 축령산 일대에는 40~50년생 편백과 삼나무 등 늘푸른 상록수림대 1천148ha에 250만 그루가 울창하게 조성돼있어 피톤치드 삼림욕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편백인공조림지다. 전국최대조림 성공지로 손꼽히는 축령산의 편백나무는 독림가로 이름을 떨친 춘원 임종국 선생이 1956년부터 21여년간 조림하고 가꾼 결과다.

 

피톤치드가 가장 잘 발산되는 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사이다.

 

편백나무는 4월에 꽃이 피며, 암수가 각각 다른 가지에 달린다. 9~10월에는 열매가 홍갈색으로 익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백나무가 유명한 것은 바로 피톤치드의 함량이 높은 수종이기 때문이다. 물론 침엽수는 기본적으로 많은 피톤치드를 함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피톤치드의 함량은 편백나무가 최고다. 삼나무가 겨울에 100g당 3.6㎖, 여름에 4.0㎖의 함량을 보이지만 편백나무는 겨울 5.㎖l, 여름 5.5㎖의 함량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균이나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내뿜는 것으로 해충에게는 유독하지만 사람에게는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을 경감시키고 장과 심폐기능을 강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치유의 숲' 축령산에는 지금도 매일 아토피나 천식환자는 물론 암 환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길이 험난하지 않다. 축령산이 지난 2009년 산림청에 의해 '치유의 숲'으로 선정되면서 국비를 들여 건강증진센터와 보행식 물치유시설, 테라피 로드, 전망대 등을 갖췄고 ▶숲내음길(2.2㎞) ▶산소숲길(1.9㎞) ▶건강숲길(2.9㎞) ▶하늘숲길(2.7㎞) 등 걷기 편안한 숲길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간벌한 편백나무를 뿌려 조성한 오솔길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는 정오 무렵에 축령산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톤치드를 흠뻑 마실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오전 11시와 오후 3시까지여서 많은 이들이 있다는 설명이다. 기온이 상승하는 이 시간대에 피톤치드 방출량이 최대치에 달한다는 것이다. 물론 땀은 나지만 몸이 찝찝하기보다 개운한 느낌이다. 더욱이 숲길 곳곳에서 풍기는 은은한 숲내음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며 피톤치드에 샤워효과를 극대화시킨다.

◇ 교통편
호남고속도로 장성IC→가작교차로에서 장성|상무대 방면으로 좌회전→24번 국도 장성교차로 에서 함평|해보|상무대|평림댐 방면으로 우측방향 →상무로 24번 국도 고가도로 → 장산사거리에서 통안(홍길동생가, 필암서원) 방면으로 우회전 → 추암로 추암|축령산휴양림 방면으로 우회전 → 축령산휴양림(20분소요)
문의 : 장성군 문화관광과 061-390-7224 / 축령산 숲해설사 신청 061-470-5344

◇기의 고장 영암 도갑사에서 쉼을 배우다

도갑사는 신라 4대 고승 중 한 분인 도선국사가 880년 창건한 고찰이다.

 

장성에서 피톤치드로 흠뻑 샤워를 하고난 뒤 이번에는 영암으로 내려가 월출산의 기(氣)를 받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밤에 내린 비로 바위산인 월출산을 오르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천상 바위예술관 혹은 산상조각공원이라는 월출산을 눈앞에 두고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천년 고찰 도갑사로 향했다.

월출산 자락 도갑사는 신라의 4대 고승인 도선국사가 880년 창건한 사찰이다. 해탈문(국보 제50호)과 마애여래좌상(국보 제 144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 89호) 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조선 초기인 1456년에는 전각과 요사채가 966칸에 이르는 대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축소됐다. 쌀이나 곡물을 씻던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거대한 석조가 대웅보전 앞에 놓여 있어 사찰이 컸을 때는 스님 1천여명이 기거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는 않는다.

 

도갑사 주지인 월우 스님.

둘러볼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은 곳이다.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며 주변을 둘러보려는데 도갑사 주지인 월우 스님이 "뭐 그리 바쁠 것 있느냐"며 "차나 한 잔 하자"고 손을 잡아 끈다. '여행을 떠난 자가 급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스님을 뒤따랐다. 

 

월우 스님이 내놓은 대홍차

 

스님은 대홍차와 떡, 과일을 내주시며 "기본 석잔은 마셔야 한다"고 은근히 강요하신다. 주지스님은 자연스럽게 '쉼'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리 절이 고찰이고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있다보니 높으신 분들이 며칠 쉬어가겠다며 종종 들릅니다. 허~ 그런데 하루도 못돼 되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더 높은 분이 전화 한 통하면, '급한 일이 생겼다'며 하루를 못있다가 서둘러 올라가시는 거죠. 속세의 인연을 잠시 끊어 두지 못한다면 진정한 쉼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스님의 말씀은 정확히 차 석잔을 마실 정도의 시간에 끝이 났다.

스님의 말씀 속에서 치유를 테마로 떠난 남도여행의 목적은 이미 달성된 터였다. 결국 도갑사와 영암에 대한 더 이상의 취재는 무의미했다. 그래서 조만간 월출산과 도갑사를 다시 찾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