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파목칼레 여행 중

　PMC프로덕션(난타 제작사) 홍보팀장의 경험은 결국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해외시장 조사를 위한 일본 연수는 결국 4년6개월에 달하는 전 세계 해외여행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축제 전문가로 다시 태어났다.

　유경숙(36) 세계축제연구소장은 참으로 밝고 에너지 넘치는 이였다. 일과 취미의 경계를 허물고 ‘축제’란 유쾌한 소재에 몰입했듯, 그는 해외 유수의 축제에 대한 패턴과 철학을 거침없이 전했다. 최근 세간에 내놓은 28개국 101개의 축제를 소개한 <유럽 축제 사전>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다.

　“그 나라, 지역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축제만이 감동과 변치않는 흥행을 줄 수 있을 터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적 이유 등으로 만든 인위적 축제가 넘쳐나 우려스럽다. 엇비슷하고 매력 없는 축제는 결국 도태되고, 흉물로 전락할 뿐이다.”

　-축제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어떻게 해외, 그것도 유럽의 축제에 빠지게 됐으며, 책을 출간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처음엔 딱히 축제만을 위한 시작이 아니었다. 공연기획자, 마케터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콘텐츠와 해외의 그것이 유입되는 비율이 지나치게 불균형한 것을 보고, 해외시장을 일단 분석해야 한국 콘텐츠의 해외수출이 활성화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공연 따라 세계일주’다.

　2006년부터 준비해 1년 만인 2007년 떠났다. 직접 축제를 체험하다 보니 공연과 축제의 공통분모가 매우 많았다. 공연 트렌드를 조사하기 위해 찾아 떠난 여행이, 자연스럽게 축제 여행이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해외 축제시장 조사가 벌써 4년6개월이나 됐다. 지난해 한국에 입국했고 그동안 조사한 것 가운데 한국 입장에서 볼 때, 단기적으로 가장 활발한 문화 콘텐츠 교류시장이 될 곳이 유럽이기 때문에 이번에 <유럽 축제 사전>을 내놓게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축제가 있을 듯싶다.

　“너무 많다. 다만 한국에는 거의 소개된 바 없는 축제인데, 독일 남부 국경 근처 작은 산속 도시에서 펼쳐지는 오버람머가우 페스티벌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오버람머가우는 종교 축제이지만, 종교성을 제외하고라도 매우 본받을 점이 많은 특이 축제 중 하나다. 400년 이상된 이 축제는 1000명이 넘는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들고 출연한 대규모 연극을 축제화한 형태다. 그것도 10년마다 한 번씩 열린다. 제목은 ‘예수의 수난극’이라는 연극인데, 연출, 안무, 배우, 지나가는 동물조차 모두 이 동네 사람들이 출연한다. 축제에 스태프로 참여하든, 배우, 식사 당번, 티켓판매, 주차요원으로 참여하건, 자격요건도 엄격하다. 반드시 이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만 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이 마을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사람만 축제에 함께할 수 있다. 때문에 10년에 한 번만 열리고, 동네 사람 1000명 이상이 함께 참여하며 심지어 돼지, 양, 염소, 비둘기까지 연극에 골고루 참여하니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도 이 작은 마을의 뜨거운 축제를 누구나 한 번쯤 보고 싶어할 것이다. 다음 축제는 2020년에 열리니 주의 깊게 이 축제를 챙기지 않으면 평생 한 번 보기도 어려운 축제다.”

프랑스 오리악(도시) 페스티벌에서 공연중인 모습

    -유럽의 축제, 한마디로 우리와 어떤 점이 다를까.

　“우리 축제는 관광학적 측면에서만 지속적으로 계발하는 측면이 강한 듯싶다. 반면 유럽의 축제는 예술성이 짙다. 그로 인해 달라지는 것은 하나다. 축제의 생명력이다. 예산이 지원되는 몇 년 동안만 반짝하지 않고, 축제가 지속적으로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의 지역축제는 전반적으로 예술성이 결여되어 있다. 때문에 축제의 품위가 떨어지고, 단순한 재미에만 치중하며, 그저그런 비슷한 이벤트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큰 차이점은 한국에 비해 유럽의 축제들이 지역적 특성을 잘 살려 축제의 핵심요소로 잘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축제들도 몇몇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좋은 축제들이 있고, 잠재적 가능성이 점쳐지는 곳들이 있는데, 그 이외에 특별한 전략 없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축제들의 가장 부족한 면이 지역성을 전략적으로 잘 살려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예술성까지 효과적으로 가미되지 않아 축제가 아닌 작은 이벤트 수준으로 전락하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축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급하게 만들어지는 축제들, 지역특산물을 홍보하기 위한 이벤트인 데도 문화축제라고 명명되는 유령 축제들을 하루빨리 걸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시행하려면 국가적으로 문화예술 축제들의 육성, 지원정책에 대한 큰 방향성을 재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관광축제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장기적 성장 가능성이 있는 축제와 단순 이벤트성 축제들을 엄격히 가려 집중 육성할 수 있는 개별적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프랑스 샬롱 거리축제의 거리 악사

　-난타 홍보팀장 등 다양한 업역에 몸담아 오다 세계여행을 떠났다. 유 소장이 생각하는 직업과 취미의 경계란.

　“직업과 취미의 차이는 적어도 내게는 없다. 난 직업을 놀이하듯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가장 즐기고 싶은 취미를 직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해 그렇게 하고 있다. 다행스럽게 그 노력이 잘 조화를 이뤄 그런 점에서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그동안의 다양한 활동, 즉 공연기획, 문화마케팅, 홍보, 축제, 여행 등의 경험은 그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기준에 의해 결정된 것들이다. 내가 가장 많이 웃을 수 있는 일인지의 여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듯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축제를 집중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첫 프로젝트였던 ‘공연 따라 세계일주’를 통해 이미 대륙별로 대략적인 정보는 갖고 있지만 추가적 검토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정보를 완성해 책이든, 웹이든 필요한 사람들과 공유하려 한다. 다만 이번엔 관심 있는 후배들을 선발해 함께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프리카 또는 아시아의 문화 축제에 관심 있는 젊은이 또는 기업도 관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