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항공우주국(NASA)이 스피처 우주망원경 관측 결과를 토대로 작성해 지난해 3월 공개한 130억살짜리 ‘어린 블랙홀’ 주변 모습. photo 조선일보 DB

9월 23일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를 찾았다’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실험 결과가 발표되면서 세계 물리학계가 떠들썩하다. 일반인들의 궁금증은 만일 이 물질이 입증된다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기술적인 문제는 어찌 됐든 이론적으로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시간이란 무엇일까
   
   시간은 무엇이고 공간은 또 무엇일까? 먼 옛날부터 많은 사람을 괴롭혀 온 문제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파악하기 위해 1초와 1m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뉴턴은 ‘시간은 언제 어디서나 일정한 속도로 똑같이 흐른다’는 ‘절대시간’과 ‘공간은 어느 방향으로도 똑같이 퍼져 있다’는 ‘절대공간’이라는 개념을 가졌다.
   
   이런 사고방식을 뒤엎은 것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다. 상대성이론은 여태까지 절대적으로 구분됐던 시간과 공간을 따로 두지 않고 하나로 묶은 4차원의 시공간이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이는 시간과 공간은 독립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성질이 공간과 별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시간을 논의할 때는 어떻게든 공간의 논의로 연결된다.
   
   또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의 시공간은 더욱 이상한 존재로 우리 앞에 다가선다. 운동하는 물체에서는 시간이 느려지고 중력이 강한 곳 주위에서는 공간이 뒤틀리고 휘어지며 시계가 늦게 가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마치 시공간이 무대가 아니라 배우처럼 역동적인 존재다. 이는 공상과학소설처럼 느껴지지만 현실 세계에서도 확인된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공간에서는 앞뒤 상하 좌우 세 방향 어디로나 갈 수 있지만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이동한다. 예를 들어보자.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으면 열은 뜨거운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흘러 마지막에는 물 전체가 같은 온도가 된다. 이 현상을 비디오로 찍어 거꾸로 돌리면 누가 봐도 곧 그 영상이 거꾸로 돌리는 것임을 알게 된다. 똑같은 온도의 물이 뜨거운 물과 찬물로 저절로 나누어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또 도자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려 깨진 경우는 되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도자기는 질서 잡힌 구조이고, 깨진 파편은 무질서한 구조다. 질서 잡힌 구조가 시간의 경과와 함께 무질서한 구조로 향하는 것을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은 절대로 거꾸로 되돌릴 수 없다. 따라서 시간의 방향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그래서 일단은 시공간에서 거꾸로 갈 수 없다고 정의한다.
   
   
   중력 엄청난 블랙홀선 시간 느려져
   
   그런데 ‘백 투 더 퓨처’나 ‘터미네이터’ 등의 공상과학(SF)영화에서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고, ‘스타트랙’에서는 우주함선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야말로 ‘초(超)광속 여행’이다.
   
   과거로 되돌아가거나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만큼 많은 사람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다. 미래로 가서 현재로 되돌아오지 못해도 좋다면, 언젠가는 시간여행이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재미가 없다. 미래로 가서 그 정보를 가지고 현재로 되돌아온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시간여행이 우리의 흥미를 자극한다.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은 이론적으로는 과거로의 여행보다 복잡하지 않다. 과학자들은 블랙홀이라는 존재 자체가 미래로 가는 간편한 타임머신이라고 얘기한다. 은하만큼 큰 지평선을 가진 블랙홀을 찾아 그 지평선 위에 1년 동안 매달려 있다가 돌아오면 1000년 후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몸무게가 45억㎏으로 느낄 만큼 엄청난 중력을 가진 블랙홀은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험의 정확성을 떠나 CERN이 발표한 빛보다 빠른 물질을 이용하면 진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일단 빛보다 빨리 달리면 과거로도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상대성이론에서는 빛의 속도로 움직일 경우 시간은 흐르지 않고 이보다 빠르게 움직이면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빛보다 빠른 가상의 입자를 ‘타키온(tachyon)’이라 한다. 빛의 속도보다 빠른 입자가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그 입자에 대해 정해놓은 이름이다. 그 후보 가운데 하나가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인 중성미자다. 어쩌면 이번 발견으로 중성미자가 진짜 타키온이 될지도 모른다.
   
   타키온이 존재한다면 미래는 물론 과거로도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달리는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0.5초만큼 연장시키려면 초당 40만㎞ 속도로 달리면 된다. 빛의 속도(초당 약 30만㎞)보다 빠를수록 시간은 더 더디게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빛보다 훨씬 빠르다면 이론적으로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상황까지 가능해진다.
   
   그런데 그 방법은 일반적인 시공간이 아니라 시공간을 구부려야 가능하다. 가장 쉬운 예를 들자. 평평한 2차원 시공간을 시간 방향으로 둥글게 원기둥 모양으로 말아보자. 시간, 공간 모두 각각 1차원씩인데, 원기둥의 축 방향이 공간축이고 원기둥을 감싸는 방향이 시간축이다. 이 시공간에서 원통을 둘러싸는 한 원을 그린다. 이 선을 따라가면 시간 방향으로 진행해가면서 다시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온다. 따라서 물체의 미래가 자신의 과거가 되며 과거로의 여행이 이뤄진다. 이는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할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에 의해 가능하다.
   
   
   웜홀은 존재할까
   
 

   굽은 시공간으로는 과학자들이 생각해낸 웜홀(Worm Hole)이나 우주끈을 들 수 있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주 공간에는 블랙홀(Black Hole)과 화이트홀(White Hole)이 있다.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 커서 심지어 빛조차도 빠져나갈 수 없는 천체를 가리키며, 화이트홀은 물질이 그 내부로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내뿜기만 하는 천체를 가리킨다. 블랙홀은 그 존재가 확실해졌으나 아직 화이트홀이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블랙홀의 명명자 휠러(J. A. Wheeler)는 블랙홀의 흡입구가 있는 세계와 화이트홀의 방출구가 있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를 생각했고 이를 웜홀이라 명명했다.
   
   웜홀이라는 시공간의 특별한 구조가 있으면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 웜홀은 시공간이 떨어져 있는 두 지점을 연결하는 일종의 ‘지름길’이다. 예를 들어 지구의 남극에서 북극을 가려면 지표면을 따라 반원을 그리며 가야 한다. 하지만 남극에서 지구 중심을 통과해 북극을 지나는 길이 있다면 직선이 되고, 따라서 반원보다 짧아진다. 우주에서도 공간을 구부려서 그 두 지점을 잇는 홀이 있다면 지름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웜홀 속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극단적으로 느려진다. 이 때문에 웜홀을 사용하면 공간적으로 떨어진 두 지점을 순식간에 오갈 수 있게 된다.
   
   웜홀의 2개 출입구를 A와 B라고 하자. 출입구 A를 그대로 두고 출입구 B를 광속으로 가속해서 앞으로 보냈다가 바로 감속해 다시 원래의 위치로 되돌린다. 그렇게 하면 출입구 B의 시간은 출입구 A의 시간에 비해 느려진다. 즉 A가 오후 10시라면 B는 오후 4시가 되는 식이다. 따라서 처음에 같은 시간이었던 2개의 출입구는 나중에는 다른 시간(B의 시간이 A의 시간보다 과거가 됨)이 된다. 여기에서 A에 있던 사람이 B로 들어가면, 오후 10시의 세계에 있던 사람이 오후 4시의 세계로 시간여행을 하는 셈이 된다. 출발한 시간보다 과거가 되는 것이다.
   
   결국 빛보다 빠른 타임머신을 탄다고 할지라도 시간여행이 가능하려면 굽은 시공간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웜홀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다.
   
   
   할머니의 역설
   
   그런데 이론 복잡한 시공간의 문제가 해결돼 천신만고 끝에 타임머신 제작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치자. 그래도 걸리는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인과율’이다. 인과율이란 어떤 일이든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생긴다는 법칙이다. 이 불문율이 과거를 바꾸는 문제를 철저하게 막고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는 미래 지구를 구할 영웅을 없애기 위해 미래에서 터미네이터가 과거로 가서 어린 그를 죽이려고 하지만 결국 죽이지 못한다. 과거로 가서 어린 그를 죽이게 된다면 미래의 일 자체가 모두 헝클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발생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만약 시간여행에서 내가 과거로 돌아가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한다면 현재의 나는 태어날 수 없게 되는 역설이 발생하게 된다. 또 만약 과거로 돌아가 할머니를 살해한다면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 어머니도 나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다소 유쾌하지 않은 가설이지만 ‘타임머신’이라는 아이디어가 세상에 발표됐을 때의 문제점을 이보다 정확하게 지적한 것은 없다. 그래서 설령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이미 이뤄진 일을 변동시키려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할머니의 역설’에 대해 물리학자들은 두 가지 답을 제시한다. 그중 하나는 ‘다세계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 무한개다. 따라서 무한개의 세계사가 존재한다. 내가 과거로 되돌아가 역사를 바꿀 경우, 그 시점에서 자신이 온 미래와는 다른 세계, 다른 역사가 시작된다.
   
   즉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할머니를 살해하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가 살아서 어머니를 낳고 어머니가 다시 나를 낳는 우주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를 전체 역사로 보았을 때 이들의 만남이 없던 것처럼 된다. 이들의 만남으로 생기는 상호 인과관계의 모순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다만 다른 우주로 이동해 달라진 역사에 참여했을 뿐, 자신이 온 미래는 어딘가에 다른 평행 세계로 남아 있으므로 모순은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생각은 역사는 확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더라도 어떤 방해를 해서 역사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다른 사건에 의해 나는 부모의 결혼을 방해할 수 없으며, 젊은 할머니와 만나 차를 함께 마실 수는 있지만 살해할 수는 없다. 나는 이미 존재하고, 내가 있으려면 할머니가 죽지 않아야 모순이 없다는 것. 이 이론에 따르면 과거로의 여행은 가능하지만 과거를 바꿀 수는 없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 빛보다 빠른 타임머신을 만들어 떠나는 시간여행은 곧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상대성이론 자체가 광속을 뛰어넘는 물질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됐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빛보다 빠른 물질이 있다고 증명되면 시공간 개념은 크게 바뀔 것이다. 아직까지 이론상으로는 시간여행이 문제가 없다고 하니 계속 지켜봐야 할 흥미로운 과제다. 우리에게 과학은 늘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