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렌터카에는 두 종류가 있다. ‘부자’ 렌터카와 ‘가난뱅이’ 렌터카다. 공학적으로는 ‘4륜’과 ‘2륜’이다. 4륜은 아이슬란드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있지만, 2륜은 포장도로만 달릴 수 있다. 그런데 그 포장도로가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도는 일종의 해안도로, 링로드밖에 없다. 내륙에는 비포장이라기엔 한없이 오프로드에 가까운 길이 나 있다. 비가 오거나 화산이 폭발하면(!) 길이 바뀐다. 새로 파인 웅덩이도 지나야 하고 강물도 건너가야 한다.

수백개의 빙산이 점점이 떠 있는 아이슬란드 남부 요쿨살롱.

도로 이름 앞에 ‘F’가 붙어 있으면 ‘Four wheel’, 4륜 전용이란 이야기다. ‘F285’-이 얼마나 여행자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란 말인가. 그러나 4륜 렌터카는 2륜의 2배 값이었다. 레이캬비크에서 남쪽으로 가는 S1번 도로를 달리고 있던 우리의 빨간색 피에스타는 2륜이었다. 렌탈 계약서에는 ‘F도로를 절대 달리지 않는다’도 들어 있었다. 털털거리는 소리만큼은 4륜 못지 않았다. 시속 90㎞ 정속으로 달리고 있는 우리 옆으로 ‘부자’ 4륜차들이 빵빵거리지도 않고 추월해 지나갔다.

빙하 호숫물에 발담가 피로회복
햇살과 비와 먹구름이 교대로 오가는 날씨였다. 멀리 차창 밖으로 화산 헤클라가 따라왔다. 모자, 혹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활화산은 1104년 크게 폭발해 근처 바이킹 거주지를 싹 쓸어버린 뒤 지금까지 적어도 15번은 분출했다.

100년 동안 줄기차게 연기를 뿜어대던 헤클라가 1947년 마지막 김을 힘겹게 뿜어내고 휴식에 들어가자, 사람들은 이제 드디어 헤클라가 활동을 중단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 화산은 1970년 다시 한번 크게 폭발한 뒤 10년 단위로 폭발하고 있다. 헤클라는 16세기에 ‘지옥의 입구’로 결정됐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여 ‘여기는 지옥의 입구, 땅땅땅’ 하고 정했다는 게 어이없지만, 그렇게 믿었을 만은 하다. 화산의 검은 연기와 재가 언제나 덮고 있어 헤클라의 정상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씩씩한 트레커들이 정상까지 열심히 기어 올라간다. 8시간이면 지옥의 입구까지 간다. 정상에는 빙하가 있지만 화산의 열기 때문에, 혹은 8시간 산을 타서 온 몸에서 열이 나기 때문에 전혀 춥지가 않다고 전해진다. 그 헤클라로 가는 입구 헬라에서, 그러나 우리는 계속 달려야 했다. 오직 4륜차만이 헤클라 입구로 갈 수 있다. 뒤따라오던 은색 ‘부자’ 차가 보무도 당당하게 좌회전 깜빡이를 켰다. 앞머리를 단정하게 자른 것처럼 착하게 생긴 아이슬란드 말들이 풀을 뜯다 말고 혀를 끌끌 차며 우리를 쳐다봤다. 몇 시간 뒤 ‘라키’ 입구에서도 우리의 피에스타는 잠시 주춤하다 직진할 수밖에 없었다. ‘라키’는 19세기 후반 폭발해 지구 반대편 일본의 농작물에까지 피해를 입혔다는 악명 높은 화산 아니었던가. 이대로 우리는 기름 떨어질 때까지 바닷가만 달려야 한단 말인가. 다음날 바닷가 마을 비크 뒷동산에서 자동차 성능 시험을 해봤다.

그러나 피에스타의 바퀴는 자갈밭 언덕을 채 20m도 올라가지 못하고 헛돌았다. 엑셀을 밟으니 아예 푹 빠졌다. 조용히 후진으로 언덕을 내려왔다. ‘북극곰’(여행을 함께 한 이의 별명)이 삐죽거렸다. 아이슬란드 렌터카 협회가 2륜차로 F도로를 달리지 못하게 하려고 개조해 내놓았음에 틀림없다고.

비크는 작고 예쁜 마을이었다. 아이슬란드의 여느 바닷가 마을처럼 식당과 슈퍼마켓도 겸하는 주유소가 마을의 중심지다. 커피숍을 겸해 여름에만 문을 여는 호텔이 한 곳 있고, 교회와 호스텔도 하나씩 있다. 마을 앞바다는 미국의 한 여행잡지가 선정한 ‘세계 10대 해변’에 들어간다. 모래사장이 새카만, 몹시 보기 드문 검은 해변이어서다. 코끼리 바위, 신선암, 형제봉, 곰바위 등 현무암 해안 절경에 익숙한 우리 두 한국인 여행자는 거만한 자세로 “뭘 이런 걸로…”라며 팔짱을 꼈다.

여름 아니면 호스텔이 유일한 숙소
비크에서는 호스텔에 묵었다. 다음날 흐볼에서도 호스텔에 묵었다. 그 다음날 베루네스에서도 호스텔에 묵었으며 다음 다음날도, 다음 다음 다음날도 호스텔에 묵었다. 

‘가난뱅이’ 2륜 렌터카 피에스타.

여름엔 학생들이 빠져나간 학교 기숙사에다 호텔 체인이 깃발을 걸고 영업하지만, 그 외의 계절엔 전국 30여개 점점이 흩어진 호스텔이 유일한 숙소다. 냄새나는 양말을 벗어 거는 독일인 트레커도, 미국 패키지 노인 관광객도, 역시 부자 나라에서 와서 번쩍이는 4륜차를 끌고 다니던 일본인 커플도, 그리고 우리도 모두 평등하게 호스텔에 묵었다. 흐볼 호스텔 부엌에서는 낮에 트레킹하다 마주친 여행자들이 파스타를 끓이고 수프도 데우고 있었다.

우리도 햇반과 3분 카레를 데우고, 물만 부으면 되는 냉동동결건조 김치찌개로 저녁을 차렸다. 한국에서 고이 공수해온 김치찌개는 그러나 정말이지 아무 맛도 없었다. 썰매의 가죽끈을 끓여 국물을 마셨다는 프랭클린 선장과 북극탐사 대원들도 이 김치찌개는 꿀꺽꿀꺽 삼키지 못했을 것이다. 김치를 질겅질겅 씹고 있는데, 종일 마주치던 일본인 커플이 우아하게 두 손 가득 노란 비닐 봉지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파스타를 만들어 식탁에 앉더니 와인잔에 콜라를 붓고 ‘짠’ 하고 건배를 했다. ‘북극곰’은 1.5ℓ콜라병을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나도 꼴깍 침이 넘어갔다. 비포장-피에스타가 간신히 기절하지 않을 정도로 나 있는-도로를 따라 3㎞를 들어와야 하는 흐볼엔 호스텔과 주인 집과 창고로 추정되는 건물 한 채밖에 없었다. 가장 가까운, 25㎞ 떨어진 키쿠백야르클로시어에 있는 보너스 마트도 이미 셔터를 내렸을 시각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우리는 콜라 한 병 마음대로 살 수 없다고 아이슬란드를 비난한 전날 밤을 짧게 반성해야 했다. 스카프타펠 국립공원에서 요쿨살롱까지 100㎞에 걸쳐 끝없이 빙하가 이어졌다. 아이슬란드 남부를 덮고 있는 바트나 요쿨의 ‘손가락’이라는 작은 빙하들은 끊어지면 또 나타나고 끊어지면 또 나타났다. 빙하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어떤 빙하들은 가까이 다가가 그 앞에 고인 호숫물에 발을 담글 수도 있었다. 요쿨살롱에서는 노란색 수륙양용 오리버스를 타고 수십 수백 개의 빙산으로 다가갔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잊고 있었다는 듯 비쳐들자 빙하가 파랗게 빛났다. 얼음을 조금 잘라 씹어 먹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